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다음 해인 1989년.

한국민은 해외여행 완전자유화라는 선물을 얻었다. 그 후 20년이 조금 지난 요즘엔 국민 대다수가 외국을 구경했을 정도로 해외여행이 일반화됐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왜 해외여행에 여권이 필요한지, 또 그 여권의 발급에 숨은 비사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외국을 여행하고자 할 경우 여권법에 따라 여권을 소지하여야 한다. 여권에는 일반여권 이외에도 관용여권과 외교관여권이 있지만 대부분 국민은 일반여권을 발급받는다.

일반여권을 발급받을 때 ①여권발급 수수료 이외에 ② 국제교류기여금이라는 것을 납부하고 있다. 국제교류기여금은 현재 1만5000원 정도인데, 이 금원의 성격에 대하여 대부분은 무관심하다.

국제교류기여금이란 한국국제교류재단법에 따라 위 재단이 여권을 발급받는 국민으로부터 기부금으로서 모금할 수 있는 금원이다.

자! 이쯤 되면 의문이 들 것이다. 국제교류기여금은 기부금임에도 불구하고 기부의사를 묻지 아니하고 사실상 강제로 징수하고 있다.

여기에 의문을 느낀 한 분이 필자에게 소송의뢰를 부탁했다.

처음에는 망설이면서 이 분에게 소송 포기를 권유했다.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이 분에게 돌아가는 금원은 1만5000원에 불과하다. 반면에 소송을 제기하려면 최소 인지대 9만5000원과 송달료 6만400원이 필요하다.
나아가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변호사비용까지 부담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분의 한마디에 필자는 초라해졌다.

이 분은 말했다. "비록 당장 나 자신에게는 적은 돈이고, 오히려 손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작은 발걸음이 새로운 길을 내는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필자는 변호사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소송을 대리하기로 정했다.

법조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내가 갖은 작은 능력이나마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참으로 기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초심을 잠시 잃었던 것이 아닌가 자책했다. 현재 이 소송은 행정소송으로 진행 중이다.

결과가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아 법원도 부담스러운 재판으로 느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의뢰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다. 초심이 필자에게 큰 힘으로 다가오고 있다.

처음부터 '길'이란 것은 없다. 한 사람이 걸어가고 다음 사람이 따라 걸어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