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도 대항마을에 있는 장군봉에서 바라 본 소매물도와 등대섬의 낙조. 마치 섬이 둥둥 떠다니는 듯하다.

 한 점 섬 매물도(每勿島)로 가보자.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열리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에도 지금 봄이 한창이다.
70m 열목개 몽돌해변은 자그락자그락 파도가 밀릴 때마다 그 너비만큼이나 봄소식을 전한다. 산비탈에 제멋대로 난 방풍나물은 그렇다 쳐도 손바닥만한 텃밭의 마늘은 제법 허리가 꼿꼿하고 미역과 톳, 파래, 벚굴은 예의 그 짭짜름한 맛으로 봄의 미각을 자극한다.
섬에 가거든 안부를 묻고 그동안 잘 있었냐고 손을 내밀어 보면 어떨까.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벌어지는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 열목개. 파도가 연실 봄을 실어 나르느라 돌들이 동글동글해졌다.

매물도는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한산도와 비진도를 지나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다.

직선거리로 26km인 매물도는 잘 알려진 소매물도와 등대섬 말고도 맏형격인 대매물도까지가 한 식구다.

당금마을과 대항마을이 있는 매물도와 소매물도까지 세 마을을 다 합쳐도 주민은 70~80명이 고작이다. 예전에는 학교가 두 곳에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없는 탓에 모두 폐교가 됐다.

‘쿠크다스’ 과자 CF로 알려진 등대섬과 소매물도는 비교적 사람이 덜 그립지만 매물도는 아직도 헛헛하다. 그나마 산책로가 만들어지자 관광객들이 찾는 통에 본섬인 형 노릇을 제법 한다.

섬이 다 그렇겠지만 매물도는 선착장에 내려서자마자 조금은 가파른 고갯길이다.

당금마을과 대항마을을 이어주는 산길은 15분이면 된다. 어느 쪽에 내리든 산책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데 5.2km로 1시간이면 된다.

매물도 대항마을 뒷산인 장군봉에서 거제방향을 바라보는 연인. 여기서 보면 남해 다도해의 풍광이 제법이다.

대항마을에서 길을 나서면 장군봉(210m)을 기점으로 섬은 눈 가는 곳마다 온통 섬이다. 그야말로 다도해가 앞마당처럼 널찍하다. 산책로에는 누런 억새와 동백꽃이 손짓하고 오리나무 등이 섬과 숨바꼭질 하듯 인사를 건넨다.

장군봉에 오르면 소매물도와 등대섬이 코앞이고 그 옆으로 욕지도, 가익도, 사량도, 소지섬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섬 특성상 가파르게 겨우 매달린 밭도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죽기 전에 꼭 봐야할 눈물 나게 아름다운 낙조풍광을 이곳에서 만난다. 바로 ‘꼬돌개’다. 다도해 속으로 사라지는 낙조가 한 폭의 그림이다. 이곳에는 아름드리 해송이 터줏대감처럼 바다를 굽어보지만 마을사람들의 아픈 사연도 전해진다. 200여년 전 처음 이 섬에 들어온 이주민들이 섬 생활의 척박함과 괴질로 인해 모두 이곳에서 ‘꼬돌아졌다(고꾸라졌다의 방언)’는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등대섬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소매물도 망태산. 1박2일 강호동이 이곳에서 '퐁당퐁당' 돌림노래를 했다.

이곳까지 온 이상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안보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이른 아침 물때를 맞춰 등대섬으로 가면 부스스 눈 뜬 흰 등대가 뭔 일인가 싶어 내다본다.
나무계단을 따라 등대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면 하루 두 번 길이 열리는 ‘열목개’가 70m 몽돌 길을 내준다.

동글동글 어디서 굴러왔는지 다시 물에 잠기기 전에 봄소식을 전하느라 이놈들도 바쁘긴 마찬가지다.

소매물도로 건너와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1박2일 강호동이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돌림노래를 부르던 계단 길이고, 이 섬에서 가장 높은 망태산이다. 동백꽃이 흐드러진 이곳은 등대섬이 한 손에 잡힐 듯이 내려다보인다.

전망 좋은 곳은 카메라가 스스로 반응한다는 우스개 말처럼 다들 사진촬영에 정신이 없다.
하산 길엔 예전 밀수감시초소로 쓰였던 건물이 무슨 우주선 모형으로 주인 없이 버려져 있고, 그 아래엔 녹슨 그네와 시소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폐교가 버티고 있다. 이곳 일대는 아름드리 동백들이 빼곡하게 도열하듯 서 있어 바다를 살짝 감춰준다.

소매물도 폐교 운동장의 담장역할을 하는 동백꽃이 활짝 폈다.

선착장 못미처 소매물도 특산품을 파는 할머니와 딸은 변변한 가게도 없이 싱싱한 방풍나물(5000원)과 톳, 파래, 김 등을 내놓고 파는데 오히려 더 서정적이어서 결국은 한 봉지씩 사고 만다.

선착장 마을은 펜션과 민박, 찻집 등이 제법 운치 있게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 파는 벚굴은 살이 올라 엄지손가락보다 큰데 1망에 1만5000원이다.

시인 정호승은 ‘눈물이 나거든 기차를 타라’라는 시집에서 ‘소매물도에서 쓴 엽서’를 이렇게 노래했다.

“누님/저 혼자 섬에 와 있습니다/섬에는 누님처럼 절벽이 많습니다/푸른 비단을 펼쳐놓은 해안가를 거닐다가/소매물도 다솔커피숍에 철없이 앉아/풀을 뜯고 있는 흑염소들의 뿔 사이로/지는 저녁해를 바라봅니다/누님이 왜 섬이 되셨는지/이제야 알겠습니다/하룻밤 묵고 갈 작정입니다.”

시에 나오는 다솔커피숍도 그 모습 그대로 섬의 역사가 되고 있다.

소매물도를 찾은 한 아주머니가 섬에서 난 나물을 고르고 있다. 맨 앞이 방풍나물로 한 단에 5000원이다.

거제도에서 왔다는 아주머니들은 한 손에 봉지와 칼을 들고 나생이가 어디 있나 두리번 거리더니 “등대섬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묻기에 “여기서도 한참 남았고 물때를 못 맞추면 가지도 못한다”고 하자 “그럼 다음에 또 오면 되지”하고는 웃는다.

사실 그렇다. 그 섬에 가는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가 억지로 데려갈 것도 아니라면 아주머니의 말이 정답이다.

“그래 한 번 더 오면 되지.”

소매물도와 매물도를 연결해주는 낚싯배. 정기선 외에는 이 배를 이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