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씨와 서울의 밤하늘이틀간 로마의 수많은 관광객과 조금은 압도적인 수준의 빼곡한 유적들에 부대끼다 보니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다행히도 다음 일정이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를 올라가면 나오는 조용한 성채도시 Assisi(아씨씨)였다. 아씨씨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가톨릭의 주요 순례지 중 하나인 아씨씨는 마을의 새하얀 건물들과 탁 트인 움브리아 평야의 그림 같은 경치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아씨씨를 대표하는 산프란체스카 성당은 마을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래로 아씨씨의 동화 같은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을 찾는 한국 여행객은 대부분 산프란체스카 성당 근처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인 Convento(콘벤토)에서 숙박을 한다. 나 역시 그곳에서 1박을 하게 됐다. 20평 남짓의 콘벤토 여자 기숙사 내부에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6개의 침대와 3개의 소파 침대가 정갈히 놓여있고, 방에서는 테라스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연결되어 있어 숙소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테라스에서 아씨씨의 아름다운 전경을 내다 볼 수 있었다. 나는 새소리, 교회의 종소리 외의 소음은 전혀 들을 수 없는 조용한 테라스에서 탁 트인 아씨씨 전경을 감상하며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 있었다.

콘벤토의 또 하나의 매력은 10유로에 제공되는 저녁 만찬이다. 전채요리와 메인요리 그리고 와인까지 제공되는 풀 코스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그날 이곳에서 숙박했던 한국인 여섯 명중 다섯 명이 저녁 식사를 신청했다.

7시 저녁시간, 방에 있던 네 명의 언니들과 함께 숙소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 방을 나섰다. 늦은 밤은 아니었지만, 네온사인은커녕 가로등도 하나 없던 콘벤토 주위는 매우 컴컴했다. 핸드폰 불빛에 의존하며 다섯이서 서로를 붙잡고 일렬로 천천히 걸어 이동했는데, 짧은 길이었지만 어둠에 익숙하지 않던 우리는 돌에 발을 헛디디고, 나뭇가지에 다리를 긁히기도 하며 힘겹게 천천히 걸어갔다. 땅만 보며 조심조심 발을 내딛던 중 한 언니가 나지막하게 “우와… 하늘에 별 좀 봐봐”라고 말했다. 우리는 동시에 하늘을 쳐다봤다.

아씨씨의 까만 밤, 하늘에서 반짝이며 촘촘히 떠있던, 쏟아질 것만 같던 수십 개의 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별이 그렇게 하얗고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런 별을 처음 본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들 모두가 그랬다. 내 나이 또래에 한국의 도시에서만 자란 사람이라면 절대 볼 수 없었을 그 선명하고 빼곡한 별들을 보며 어딘지 몽롱한 느낌이었고, 곧이어 조금 서글퍼졌다. 우리는 평생 그런 아름다운 하늘을 박탈당했다는 아쉬움에.

1960년대 아빠가 어렸을 때는 서울 하늘에도 맑은 별이 촘촘했다고 했다. 60년대 우리 부모 세대가 보았던 서울의 하늘은 아씨씨의 하늘처럼 아름다웠을까? 그 시절 젊은이들은 가끔씩 하늘 위 반짝이는 별을 보며 꿈을 꾸기도, 잠시 쉬어가기도 했겠지. 젊은 날, 하루쯤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서정에 젖어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아씨씨의 별을 본 이후로 이해할 수 있었다.

누가 서울의 하늘을 소유할 수 있을까? 산업화 바람과 함께 들어선 수많은 공장과 오늘도 어김없이 서울 시내를 질주하고 있을 300만대의 자동차가 서울 하늘의 주인일 수 있을까. 경제 발전을 위해 환경 오염이 불가피 했던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불가피함’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불가피한’ 명목으로 서울 하늘의 별 하나가 사라지고 있을 지 모른다. 언제쯤이면 서울의 아이들도 다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꿈을 꾸고 쉬어갈 수 있게 될까.

거실의 창문 밖,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자동차의 라이트들이 유난히 얄미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