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취재가 필요한 아이템이 선정되면 일단 현지 코디네이터의 ‘레알 정보’가 일단 접수되어야 한다. 세계의 테마파크를 취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테마파크 하면 미국의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스튜디오 등 대형 시설들을 떠올리지만 조사를 하다 보니 작고 단단하고 대체 불가한 곳도 꽤 많이 발견되었다. 그 중 한 곳이 독일의 작은 마을 브레멘이었다.

이동식 놀이동산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다

 

브레멘에 도착해서 시내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내 입에선 처음 나온 말은 ‘앗, 장난감 도시닷!’이었다. 세상에! 나도 지구 곳곳 꽤나 다녀본 경험이 있는데, 이렇게 장난감 같은 도시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도시 곳곳이 마치 장난감 같은 집으로 가득했고, 어쩌면 오가는 사람들 표정도 마치 인형처럼 맑고 순수했다. 인구 55만 명쯤 사는 브레멘을 찾은 이유는 이곳이 장난감 같은 도시이며, ‘브레멘 음악대’라는 ‘고정 테마’가 있고, 벼룩시장이 열릴 때의 풍경은 시계를 천년 이상 되돌려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기에 충분한 ‘일상적 풍경’이 벌어진다는 독일 코디의 유혹 때문이었다.

 

처음 눈에 뜨인 것은 이동식 놀이기구였다. 내가 어렸을 때도 저런 놀이기구들은 있었다. 아저씨가 손으로 돌려주는 대(?)관람차, 아저씨들이 손으로 밀어주는 회전목마 등이 그것들이었다. 그 대관람차와 회전목마는 정말 오랜 세월을 달린 것으로 보였다. 여기저기 벗겨진 페인트, 사람들의 손자국으로 오래된 도시와 썩 어울리는 ‘빈티지’가 되어있었다. 브레멘 음악대는 브레멘 시티의 정체성과 일치한다. 아시다시피 ‘브레멘의 음악대’는 독일의 그림 형제가 쓴 전래동화 가운데 한 작품이다.

 

옛날옛날 먼 옛날, 독일 시골의 한 농장에서 늙은 당나귀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당나귀는 평생을 주인을 위해 일해왔는데 이제 주인이 자신을 시장에 내다 팔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서운한 마음에 한참을 울고 난 당나귀는 농장을 탈출, ‘브레멘시’로 달아나 유랑 악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탈출하는 도중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늙은 고양이, 늙은 개, 늙은 닭을 만나 그들을 음악대 대원으로 영입했다. 이 네 마리의 동물 악사들은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 열심히 합창연습을 하며 여행길을 재촉했는데, 마침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난방이 되는 집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집에 도둑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도둑들을 내쫓기 위한 작전을 짠다. 당나귀가 버티고 서 있고, 그 위에 개, 고양이, 닭이 차례로 올라탄 채 있는 힘을 다 해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른다는 게 그것이었다.

브레멘 음악대 동상 앞에 서서 ‘당나귀 울음 소리+개 짖는 소리+고양이의 기괴한 울음 소리+새벽닭 홰치는 소리’를 조합해 보느라 한참을 히죽거리고 있었는데, 결국 ‘돼지 멱 따는 소리’로 결론 내리며 킬킬거리기도 했다.

브레멘 음악대는 동화로만 끝나지 않았다. 도시 곳곳에 브레멘 음악대를 연상하는 동상이 세워졌고, 특히 당나귀 코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퍼지면서 당나귀 코는 이제 색이 벗겨지다 못해 ‘하얀 코’가 되어버렸다.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브레멘 음악대’를 대신하는 ‘인간 브레멘 음악대’가 즉석 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브레멘 시티= 브레멘 음악대’라는 등식이 이뤄지고, 그것이 도시의 관광 산업을 크게 일으키자 이제 브레멘 음악대-동물-벼룩시장 등이 조합된 축제가 정기적으로 벌어지고, 그에 따라 브레멘 시티 자체가 ‘브레멘 테마파크’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18세기 도시 스타일

 

생각이 그렇게 정돈되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도 새삼 맑아 보였다. 브레멘의 독특한 풍경은 단지 도시 곳곳이 ‘브레멘 음악대’ 주제로 꾸며진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이 늘 그랬듯이 브레멘 역시 전통과 역사, 관광 산업을 위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에 확실한 경계가 있었다. 구시가지에서 ‘내 집 내 맘대로’라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서기 787년에 카를 대제가 브레멘에 주교청을 두었을 정도로, 중세 시대의 브레멘은 독일의 중심이었고 그 산업적 기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브레멘 항구가 함부르크에 이어 독일 제2의 항구로 여전히 활동 중이기도 하다. 구 시가지의 건축, 사람들 마저 ‘멈춰진 시계’를 연상케 하는 것은 중세교회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 현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웅장한 건축물 앞에서 한자도시(한자 동맹의 멤버 도시를 뜻한다. 한자동맹이란 중세 중기에 북해와 발트해 연안에 있는 독일의 주요 도시가 뤼베르크를 중심으로 상업상의 목적으로 결성한 동맹을 뜻한다. 브레멘, 함부르크, 퀼른 등이 주요 가입 도시였다)의 번성을 엿볼 수도 있다.

시청 청사(구)는 1405년부터 1409년까지 5년의 건설 끝에 완공된 건축물이다. 청사 앞의 마르크트 광장도 기억에 담아야 할 곳이었다. 브레멘 음악대 동상이 바로 이곳 광장에 있고 고색창연한 건축물 1층에는 카페테리아가, 광장 한쪽에는 파라솔존이 설치되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누구든 이 중세의 공간에서 와인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싶지 않을까! 나 또한 그곳에 들어가 와인 한 잔을 마셨는데, 뜨겁게 데운 와인을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베트히어 거리도 볼만했다. 이곳은 중세 수공업자들이 몰려있던 골목을 복원한 곳인데, 그 옛날의 상가, 술집, 서점, 극장, 숙박업소 등이 즐비했다.

 

우리는 브레멘에서 3박4일을 머물렀다. ‘테마파크’로서의 취재는 현지 코디의 도움을 받아 이틀 만에 끝을 냈지만 도시의 매력에 푹 빠진 나와 카메라 감독의 사심이 발동, ‘구석구석을 싸돌아 다니고 맥주와 와인도 원 없이 마셔 보기’로 한 것이었다. 나머지 인원의 반응은 어땠냐고? 하하하 다큐피디의 해외 출장에 ‘카메라감독’이 동행 한 것만 해도 그 출장은 복 받은 여행이다. 친구이기도 한 우리는 나머지 이틀을 신나게 돌아다니고 열불 나게 먹어댔으며 장난감 같은 도시의 매혹적인 건축물, 사람들 표정을 하나하나 가슴에 담았다. 물론 이틀간의 ‘탈선’으로 출장비를 특초과 지출, 다음 여행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 거의 노숙 수준의 일정을 감수해야 했지만….

브레멘 여행 정보
브레멘 축제는 매년 10월 중순부터 말까지 열린다. 하지만 축제 이외의 시기에 방문해도 고도의 매력과 동화 같은 풍경은 충분히 만끽하고도 남는다.
교통편 :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함부르크에서 고속열차(IC)로 50분 정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