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단상
 여행을 다니다 보니 달라진 습관이 하나 있다．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나 일기예보를 즐겨 보게 되고， 인터넷을 통해 그 계절에 가고 싶은 곳들의 상황을 수시로 찾아보곤 하는 습관． 특히， 봄과 가을이 되면 마음이 더욱 바빠진다． 봄꽃과 가을 단풍을 최고 절정의 순간에 즐기고픈 마음에 연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려는 곳의 상황을 주시하기 때문이다．

(사진=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벚꽃)


(사진=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로망스다리 벚꽃)

 그러면서 매번 깨닫는다． 해마다 단 한번도 어기지 않고 돌아오는 개화와 단풍! 아무리 추운 겨울일지라도 따뜻한 봄이 돌아와 어여쁜 꽃을 피우며， 아무리 녹음이 우거져 싱싱했던 잎사귀들도 가을이 되면 온몸으로 자신을 불태우고 사라진다． 우리 인생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롤러코스터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롤러코스터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이 겨울처럼 추운 계절을 지내고 나면 봄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운 시기도 있는 게 또한 인생의 묘미이리라． 또한， 짧지만 아름다웠던 젊은 날이 있기에 가을날의 고운 단풍의 색깔처럼， 노년을 각자의 살아온 빛깔로 채워가는 것은 아닐는지．

(사진=제황산공원에서 내려다 본 중원로터리 일대 전경)

 동백， 매화， 산수유， 벚꽃， 유채꽃， 진달래 등 나름의 순서는 있지만， 꽃은 한번 피기 시작하면 정신을 못 차리게 할 정도로 일시에 피어났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기에 그 많은 꽃구경 장소를 한꺼번에 다 가볼 수도 없다． 인생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해준다． 나처럼 직장에 얽매여 주말에만 여행을 다닐 수밖에 없는 사람에겐 그래서 이 짧은 봄이 더욱 아쉽기만 하다．

(사진=경화역 벚꽃)
 
 봄꽃을 보면 늘 떠오르는 말이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 말은 경판(京板) ’춘향전(春香傳)’에 ’노셰 절머 노셰 늘거지면 못노나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인생이 일쟝츈몽(一場春夢)이니 아니 놀구…’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인생의 모든 것은 때가 있으니 제때 즐기라는 말도 되겠지만， 인생을 걸고 얻은 권력도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1년을 준비하여 피어난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니， 어찌 보면 우리가 악착같이 얻고자 하는 그 모든 것이 한바탕 꿈처럼 부질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진=내수면연구소 내 풍광)

 하지만， 춘향전의 구절처럼 우리가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시기도， 인생을 즐길 순간도 그리 길지 않다． 매순간을 봄꽃처럼 최선을 다해 최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지는 길은 아닐까， 봄꽃을 보며 다짐해 본다．
 
(사진=진해구 소사마을 ’웅천막사발 복원전시장’ 도자기 체험)

 올해는 벚꽃의 개화가 예년보다 늦어서 9일이 절정이 될 것 같다． 부산에 사는 즐거움 중 가장 큰 것이 언제든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수많은 벚꽃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는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남구 남천동 삼익아파트， 토곡 한양아파트， 해운대 마리나아파트 등 아파트 단지 내에도 오래된 벚꽃 가로수 길이 있다． 또 해운대 달맞이고개， 황령산， 금정구 범어사길， 경남 진해 용원 가는 길 등 드라이브 코스로도 즐길 수 있는 벚꽃 데이트 코스가 있다． 온천천에서는 강변을 따라 운동하거나 산책을 하며 벚꽃을 즐길 수 있고， 시기만 잘 맞추면 유채꽃과 벚꽃을 동시에 보는 행운도 잡을 수 있다． 그 뿐이랴． 한 시간만 차를 타고 달리면 진해， 경북 경주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벚꽃 명소에 도착할 수 있으니，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부산시민인지도 모르겠다．

　# 진해 여행
 오늘은 뭐니뭐니 해도 꼭 한번은 가봐야 할 벚꽃 명소인 진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4월 1일 개막해 10일까지 열리는 ’제 49회 진해 군항제’는 올해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가 `통합 창원시’가 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아직 풀어야 할 과제는 많지만 더욱 발전하는 축제를 기대하며 진해 여행을 떠나 보자．

(사진=웅동 소사마을 갤러리마당)

 창원시 진해구가 자랑하는 `벚꽃 7경(景)’은 장복산공원， 제황산공원， 안민도로， 해군사관학교， 여좌천， 남부 내수면연구소， 경화역이다． 이 중에서 군항제 기간에만 개방되는 해군사관학교는 해군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곳이므로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들이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제황산공원은 모노레일 카를 타고 벚꽃이 만개한 진해시를 굽어볼 수 있어 부모님을 동반한 가족들이 가면 좋은 곳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은 여좌천 로망스 다리나 경화역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면 사랑이 저절로 무르익지는 않을까?


(사진=웅동 소사마을 김씨공작소)

 하지만， 놓치기 쉬운 곳이 있으니 바로 내수면연구소이다． 명칭과 입구의 풍경만으로는 그곳에 자연스런 벚꽃 산책로가 있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각지에는 `내수면연구소’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 있다． 이름 그대로 `육지 내의 수면’인 `내수면’에 서식하는 생물들을 연구하는 곳으로， 특히 각종 어류에 대해 연구하는 곳이다． 가족 여행자들은 이 이름이 보이는 곳은 놓치지 말고 꼭 들어가 보길 권한다．

(사진=김달진문학관)

 진해의 내수면연구소는 필자가 가본 내수면연구소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이다． 연못 주변으로 흙길로 된 산책로가 있고， 그 길엔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벚나무 산책로가 끝나면 나무 데크로 된 산책로가 다시 이어지고， 그곳엔 비비추， 물칸나， 꽃창포 등 65종의 각종 식물이 제각각 모습을 뽐내고 있다． 또한 내수면연구소 내 어류 양식장과 전시관을 군항제 기간에만 개방하니 놓치지 말고 보자．

(사진=진상_해초비빔밥)

 벚꽃 구경을 했다면 사람들이 붐비는 군항제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 과거로 돌아가는 추억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 진해구 웅동에는 일명 `소사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이 마을엔 얼마 전부터 예술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나름의 문화를 형성하며 이색 마을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대나무를 이어 만든 담장과 특이한 대문． 누군가의 집인가 싶어 살짝 들여다 보니 폐가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갤러리 마당’이었다． 박배덕이라는 화가가 만든 갤러리 마당은 박 화백이 구현하고자 하는 미술의 지향점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공간이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마당， 누구나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마당처럼 ’편한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그는 말한다． 갤러리 마당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부산라듸오’ ’예술사진관’ ’태양카라멜’ 등 마치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추억의 거리가 조성돼 있고 `김씨 박물관’이라 이름 붙여진 건물 안에는 진공관 라디오， 아날로그 카메라， 축음기， 다이얼 전화기， 낡은 LP판 등 1900~1970년대 생활용품들이 쌓여 있다． 이 박물관의 주인은 15년 동안 전국을 돌며 우리나라의 근대 생활용품을 모은 김현철 씨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 `김씨공작소’는 한때 방송작가들의 아지트였다고 그는 자랑하듯 말한다．

 추억의 거리를 돌아나오면 진해 출신의 생명파 시인인 서정주·김동리·오장환 등과 ’시인부락’의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쳤던 김달진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이 나온다． 진해가 `김달진 문학상’을 제정하여 유능한 문인들을 발굴， 후원할 만큼 김 시인에 대해 쏟는 애정은 각별하다．

 소사마을의 마지막 코스인 웅천막사발 복원전시장． 이곳 소사마을은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만들어진 지역이라고 한다． 도자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학습장도 있으니 도자기를 만들어 여행의 추억을 남겨도 좋겠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즐거움이 가득한 소사마을． 천천히 걸어서 동네 마실하듯 돌아보며 여유롭게 진해 여행을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