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필요할 때 처방

어느 주말 가볍게 날아가 홍콩의 오후를 선물할 것

침사추이의 야경

비일상의 시대

한때 익숙함이 미덕이던 시대가 있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시기. 군중 속에 나를 묻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회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익숙함은 권태로, 무난함은 나태로 그 자리가 뒤바뀐 것이다. '부하 직원이 연봉을 더 받는 꼴들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하는 식의 경영기조가 일반화될 정도로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경쟁적이며 차갑다. 신입사원들에게도 평범함은 죄악이다. 튀어야 인정받는다. 식당을 해도 평범한 메뉴와 인테리어로는 성공을 보장받지 못한다. 옷을 입어도, 여행을 해도, 디저트 하나를 먹어도 특이하고 남다른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야말로 비일상의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홍콩 시내의 모습.

생활 변주의 기술


반복되는 일상은 지겹다. 불행하게 느껴진다. 지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겨운 일상을 변주해 삶을 싱싱하게 관리하는 기술이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 학원에 다니거나 운동을 하는 식의 변화는 처음 며칠만 새로울 뿐 이내 지친다. 꾸준히 해야 하는 종류의 변화는 또 하나의 반복된 일과를 추가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변화, 나를 위해 이미 준비된 변화와 만나는 것이다. 그런 게 과연 있겠냐고 묻는다면, 기꺼이 "있다"고 대답하겠다. 바로 주말을 이용한 해외여행이다.

침사추이 부두에서 여러 종류의 관광용 배를 선택할 수 있다.

여행에게로 향함


나라가 바뀐다는 것은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다. 바뀐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일종의 정물이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특별히 관계 맺을 일도 없다. 물론 그 안에 깊이 들어서면 분명 사람이지만 짧은 주말 여행에서 그들을 사람으로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래서 좋은 것이다. 사람에 치여 사는 우리들에게 나 이외의 사람들이 죄다 정물이 되는 환경은 휴식을 위한 최고의 조건이다. 나라가 바뀌면 음식도 바뀐다.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가 비일상적인 일이다. 흔한 길거리 음식도 낯설고 편의점에 들어서기만 해도 신기한 것이 가득하다. 실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공기부터가 다르다. '더 좋게 더 높게'에 시달리던 당신, 이제 온갖 '다르게'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물론 이 여행에는 습관 하나가 필요하다. 이건 한국보다 좋다, 이건 한국보다 안 좋다 식의 여행은 애써 피할 필요가 있다. 다른 그대로 느끼고 마음껏 신기해하는 것이 이 여행에 필요한 습관이다. 거기 도착하기만 하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온갖 비일상이 넘친다.

침사추이를 즐기는 연인들.

찾아라, 가까운 비일상의 공간

나를 위해 준비된 비일상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일, 그리고 돌아오는 일. 이 일이 월차 하루를 투자한 주말만으로 가능하다면 일 년에 서너 번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혹은 나의 그이에게. 이 정도의 일정이라면 어차피 멀리 가지도 못한다. 따라서 여행 경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저가 항공사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항공사 홈페이지를 방문해 미리 살펴보면 '얼리티켓'이라는 이름으로 미리 예약하는 경우에 한해 할인해주는 티켓이 등장하기도 한다. 제주항공을 이용할 경우 일반적으로는 홍콩 40만원대, 일본 29만원대로 구입이 가능하다.  2개월 전에 판매했던 홍콩 왕복 티켓은 간단한 기내식을 포함해 26만원이었다. 이런 조건의 여행지는 엄청나게 많다. 나라가 아니라 도시 위주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 동남부의 도시들뿐만 아니라 필리핀, 타이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의 셀 수 없이 많은 도시들이 당신의 비일상을 책임질 주말 도시로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홍콩의 명물 2층 버스.

침사추이에서 얌차를


첫 번째 후보지는 홍콩이다. 홍콩 사람들은 늦은 아침에 딤섬과 함께 차를 마시는데 이를 얌차라고 부른다. 다음 달 어느 토요일에 즐기는 당신의 아침식사로 얌차를 추천한다. 침사추이에서만 게으름을 즐겨도 주말 오후가 풍요로울 것이다. 이것은 여행이 아니라 쉼이다. 한국에서의 주말과 다를 바 없다. 단지 환경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분주하게 여기저기 뒤지고 다닐 이유도 돈도 없다. 느긋하게 차 마시고 밥 먹고 산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심심하다면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야경을 즐기거나 쇼핑센터를 구경해도 좋다. 홍콩은 공항에서 시내까지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다. 힘들게 정보를 수집할 필요도 없다.

홍콩의 명물 2층 버스.

인터넷 여행 관련 카페에 가입해 게시물 몇 개만 읽어도 충분하다. 침사추이 한 곳만 기억하고 아무 정보 없이 떠나도 상관없다. 공항 안내센터에서 무료로 구할 수 있는 지도 한 장이면 2박 3일쯤 넉넉하게 채울 수 있는 여러 '거리'들을 찾아낼 수 있다. 이제 여행 정보를 책에서 구하는 일은 조금 구식이다. 어제 홍콩에서 돌아온 사람이 오늘 아침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커피 마시며 감상하고 정보를 얻는 것이 지금 시대의 방식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쉰두 번의 주말. 그 주말을 복사하듯 반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득문득 침사추이의 얌차와 삿포로의 맥주를 즐기고 돌아온 당신의 싱싱한 월요일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