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감았던 눈을 떠 봐. 그래, 여기야. 네가 그렇게 꿈꿔왔던 곳, 지중해 몰타(Malta)의 수도 발레타. 어때. 이젠 알겠지? 영화 `글래디에이터`와 `알렉산더`를 왜 이곳에서 찍었는지 말이야.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붙은 노란색 라임스톤(석회암)이 주는 질감. 레몬처럼 상큼한 컬러의 창문들. 미로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이번 여행은 이 신비한 도시에서 시작되지.

먼저 이번 여행의 화려한 주연들부터 소개할까. 먼저 우리가 묵게 될 크루즈 마인 시프 1호(Mein Schiff 1). 길이만 263.9ｍ에 달하는 괴물이지. 국제 규격 축구장의 2.5배 길이야. 여기에 함께 오를 승객만 1948명. 든든한 승무원만 780명이 오르지.

그리고, 하이라이트 `빈 필 하모닉`. 상상이나 가?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Herbert Blomstedt)의 지휘에 최근 내한 공연을 펼쳤던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가 같은 크루즈를 타고 눈 앞에서 공연을 펼친다니. 베토벤에 미쳐, 평생을 베토벤만 연구한 피아니스트 부흐빈더. 그의 심장엔 베토벤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하지. 여기에 라이너 호넥(Rainer Honeck)의 바이얼린 연주와 메조 소프라노 안젤리카 키르히슐레거가 만들어 내는 천상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니.

일정도 지중해의 바다 빛깔만큼이나 아찔하지. 꿈의 여행이 시작되는 건 오는 7월 5일이야. 우리가 있는 이곳, 몰타섬에서 시작해 이스탄불, 터키와 쿠사다시, 아테네를 찍고 다시 몰타로 돌아오는 7일간의 여정이지.

무엇보다 난 `바다 위 초호화 별장`으로 불리는 명품 크루즈 마인 시프 1호가 마음에 들어. 다른 크루즈의 1.5배에 달하는 대형 스위트 룸. 여기에 발코니까지. 뷔페에 싱싱한 생선회가 연일 감동의 맛을 전하는 스시바도 일품이지. 나 같은 일편단심 육식주의자를 위해 스테이크 하우스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일테고.

거기다 찰랑찰랑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샴페인에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블루 월드 바(Blue World Bar)`가 은은한 분위기까지 만들어 줄거야.

바다가 지겨워지는 절묘한 타이밍엔 뭍이 기다리지. 이번 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가 될 곳은 살아 있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불리는 이곳, 몰타. 여기에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터키가 가세하지. 엄격한 코란의 규율을 지키면서 개방성,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유의 도시 이스탄불에선 기독교 건축양식의 백미 이슬람 사원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로 더 유명한 아흐메트자미까지 덤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이것도 매력이야. 블루모스크는 잘 알고 있지? 황금(Altin)으로 만들어야 할 첨탑을 `6개(Alti)`로 잘못 알아들은 건축가의 실수가 빚어낸 최고 건축물이라는 사실 말이야.

이 정도쯤은 이미 가 본 여행 고수들도 있을테지. 그렇다면 이건 어때. `새들의 섬`이라는 뜻을 지닌 쿠사다시와 에페소스라면.

고대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한 에페소스는 고대의 명품관 같은 곳이지. 로마의 황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머무르며 쇼핑을 즐겼던 곳이기도 해. 할 소리 다 하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 원형인 고대의 아고라터, 지금의 상암 경기장 1.5배만 한 대극장까지 볼거리도 넘쳐나지.

터키를 떠난 크루즈의 다음 코스는 피레우스 항이야. 신들의 도시 아테네로 가기 위한 관문이지.

건축, 신학, 역사 등 유럽 문화의 발생지인 아테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오히려 인류의 보물인 파르테논, 에렉테이온, 니케 신전을 둘러보라고 쓰는 나의 손이 더 부끄럽네.

어때. 한여름 태양 볕 아래 은빛 비늘처럼 몸을 뒤척이는 지중해, 그 위를 가르고 질주하는 크루즈야. 그 위에선 연신 그리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심장을 울려대는 거지.

그래, 이쯤 돼야 제대로 된 명품 크루즈라는 생각이 들지? 그런데 비용은 얼마니? 뭐? 1850만원이라고? 세상에, 그건 아니잖아.

`아니야` 소리를 내는 데 목이 막힌다. 숨조차 쉬기 힘들다. 깨질 듯 아파오는 머리. 덜컹, 파도를 제대로 맞았는지 몸이 공중에 붕 뜬다. 털썩.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고 보니, 꿈이다. 그럼 그렇지, 여행 전문기자 팔자에 1850만원짜리 크루즈를, 그것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탈 수 있는 꿈 같은 기회가 있기나 하겠는가.

지금, 기자는 고속선 코비에 앉아 있다. 요즘 아줌마 부대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4만9000원짜리 `당일치기 대마도` 여행을 가는 중이다. 당일치기 고속선 대마도행, 누가 가겠냐 싶지만 이거 대박이다. 여행박사가 내놓은 상품은 매회 매진, 베스트셀러다. 이 여행을 하는 이들의 목적은 딱 한 가지. 면세 쇼핑이다. 어쨌거나 해외니 잔뜩 쇼핑을 하고, 물건을 받아오는 것이다.

1850만원짜리 지중해 크루즈급은 아니지만 일정도 제법 된다.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을 오전 8시에 출발해 오후 3시께 대마도를 찍고 컴백한다. 고속선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100분. 마치 후륜구동의 마흐바흐처럼 지중해를 미끄러져 가는 마인 시프 1호급은 아니지만, 현해탄을 100분만에 넘어 대마도까지 질주하는 앙증맞은 이 배, 꽤나 날렵하다.

멀미가 좀 나면 어떤가. 1850만원짜리 명품 특급은 아니지만 4만9000원짜리라도 해외는 해외니깐. 그래, 나에겐 짧고 굵은 이런 여행이 딱이다. 그나저나 옆에 앉은 부산 `아지매(아줌마)` 부대 너무 시끄럽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이겠지.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지중해 크루즈

평생, 단 한번 뿐일 기회일지 모른다. 출발일은 오는 7월 5일 딱 하루. 7일간의 여정 중 이틀간 바다에서 휴식을 하게 된다. 이때는 오붓하게 바다의 여유와 낭만, 음악을 즐기면 된다. 크루즈에서는 오케스트라의 4중주 실내악 연주회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공개 리허설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