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내 눈앞에 펼쳐진 사진 한 장은 아름다운 낙원의 형상이었다. 물빛만 보면 영락없는 인도양의 몰디브나 캐리비안 휴양지의 바다색감인데…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터어키석, 에메랄드 빛 형형한 푸른빛 말이다. 근데 병풍처럼 둘러진 웅장한 산세를 보니 분명 바다는 아니다.

여행의 출발점은 성도

주자이거우의 관문인 구황공항 모습. 사진협조: 중국국가여유국, 플래닛차이나투(www.planetchinatour.com)

그 사진 속의 풍경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그 곳은 주자이거우 또는 구채구(九寨溝)라 불리는 곳이었다. 먼저 인천에서 스촨성(사천성)의 가장 큰 도시인 성도(成都)까지 가야 한다. 성도는 ‘청두’라고도 불리며 현지에선 ‘쳉뚜’라고 한다.

여튼 쳉뚜를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공항에서 성도까진 3시간30분거리다. 웬만한 동남아시아 휴양지 가는 거리만큼, 지구의 반대편처럼 느껴지는 괌과 사이판 가는 시간과 맞먹는다. 성도에서 주자이거우, 그 이름도 이상야릇한 그 곳에 가기 위해선 50분간의 국내선을 타고 또 움직여야 했다. 미국이나 유럽도 직항으로 가는데 번거롭기 그지 없다며 투덜거릴 수도 있지만 이 오진 곳에 공항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을 해본다. 1970년에 발견이 되고 92년에 문화유산으로 지정, 2003년 공항이 생겼다 하니 세상에 알려지고 40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비행기를 타고 근처까지 날아감을 감사해야 하는 거다. 공항이 없었을 때는 성도에서 버스를 타로 10시간 정도 가야만 이 곳에 닿을 수 있었다 한다.

해발 3000m 에 위치한 주자이거우(Jiuzhaigou)의 관문, 구황공항

사진협조: 중국국가여유국, 플래닛차이나투어 (www.planetchinatour.com)

주자이거우(Jiuzhaigou)는 아홉 개의 티베트족 마을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도에서 460km 떨어진 이 곳은 1970년대에 벌목공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남아있었다. 이 후 이 곳의 아름다운 풍광은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1992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엄청난 숫자의 관광객들이 매일 매일 주자이거우로 빨려 들고 있었다. 주자이거우의 관문인 구황공항은 해발 3000m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티베트 공항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공항이라고 한다. 이 공항은 작았지만 뭔지 모를 위용이 느껴졌다. 넓고 황량한 벌판 위에 서있는 늠름한 초소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공항엔 미처 두꺼운 옷을 준비해 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겨울용 방한복을 대여하는 곳들이 눈에 띄었다. 일년 내내 관광객이 유입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론 단풍철이 가장 아름답다고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겨울에도 얼지 않는 호수의 아름다움과 설경 또한 일품이다.

사진협조: 중국국가여유국, 플래닛차이나투어 (www.planetchinatour.com)

공항에 내리자 마자 장족 가이드가 멀미약처럼 생긴 작은 병을 내민다. 고산약이다.

이 곳에 오면 열명 중 한 두 명은 고산병에 걸린다. 여긴 해발 3000m이고 내일부터 하루 종일 둘러보게 될 구채구 지역은 2500m~4000m 고도상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이 1950m이니 한번도 이런 환경에 와보지 않은 이상 자신이 고산병 체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저 복불복이다. 고산병약 입에 털어 넣고 그저 이상이 있나 없나 기다려볼 뿐. 다행이 필자는 고산병 증세는 없었다. 어지럽고 구토가 나 일행 중 한 명은 주자이거우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고 내내 호텔에서 지내야 했다.



그림 같은 비경

사진협조: 중국국가여유국, 플래닛차이나투어 (www.planetchinatour.com)

‘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주자이거우의 물을 보고 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이것만큼 주자이거우의 매력을 잘 표현하는 말도 없을 듯 하다. 오죽하면 중국인들이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걸까?

주자이거우는 히말라야가 바다에서 용솟음치며 올라올 때 생긴 거대한 협곡이다. 티없이 맑은 호수와 그 호수를 수직으로 품고 있는 원시삼림, 그리고 곳곳에 걸려 있는 폭포들이 어우러져 Y자형 계곡을 이루고 있다. 이 계곡 사이사이로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가 108개 호수와 연못을 만들고 호수와 연못 중간에 17개의 폭포를 생성했다. 이들의 드라마틱한 향연이 자연의 선물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입이 딱 벌어지고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사진에서 본 광경이 포토샵이 아닌 진품 그대로임이 증명되는 순간을 누구나 맞이한다.

일행 중 어떤 사람들은 ‘저 물에 잉크를 풀어 놓은 게 아닐까?’ 라며 의심스런 눈초리를 한다. 그만큼 자연적으로 나온 색감이라고는 믿어지기 힘든 터어키색 물빛은 이 곳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주자이거우의 비경은 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다. 이연걸과 양조위가 호수를 뛰어 다니며 검투를 벌이는 ‘영웅’의 한 장면도 바로 이 곳에서 촬영되었다.

곳곳에 무성한 원시림들을 보면 문명의 세계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거대한 자연의 모습은 인간을 다시금 겸허하게 만든다. 판다의 서식지인 사천지역 중에서도 85%가 산다는 이 곳은 97년에 세계생물권 보호구로도 지정이 되었다.

주자이거우의 주요 절경들을 둘러보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관광객을 위해 운행되는 작은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판다버스라고 불리는 이 버스는 입장권을 사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 버스가 보이면 언제든지 타고 내릴 수 있어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내고 다음 코스로 이동이 가능하다. 여의도의 85배에 달하는 대자연은 주요 지점에만 내려 빠르게 돌아봐도 하루에 다 볼 수 없다. 속속들이 감상하려면 적어도 이틀 이상은 머물러야 한다.

트레킹을 하면서 천천히 즐기려면 물론 그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도 좋은 곳이다. 곳곳에 나무계단과 산책로가 잘 단장되어 있어 천천히 호흡하면서 걸으면 웰빙 여행, 산림욕이 따로 없을 정도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우리 일행은 판다 인형을 매단 깃발을 들고 안내하는 조선족 가이드와 함께 동행했다. 주요 포인트에선 잠시 멈추어 사진을 찍었다. 셔터를 누르느라 바쁜 손길들이 이어진다. 최고의 포인트들에는 어김없이 장족들이 전통의상을 들고 나와 호객행위를 한다. 전통의상을 입고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에게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만만치 않다. 조선족 가이드는 일이 많이 없는 겨울엔 성도에 머물다가 한창 바쁠 땐 주자이거우에 들어와서 몇 달씩 산다고 했다. 그녀가 짚어주는 절경의 포인트마다 멈추고 서고 가고 하면서 소풍 온 아이들처럼 깃발보고 따라다녔다. 겨울에도 이런데 한창 사람이 많을 땐 떠밀려다닌다는 표현이 맞겠구나 싶었다.



절경 하이라이트

새도 바다 안에 날고 물고기도 하늘에 날고 있었다. 주자이거우의 거울 같은 물과 그에 비친 산들을 보니 어디가 하늘이고 물인지 알 수가 없다.

수정궁

진주탄 폭포

여행의 시작점인 수정거우에는 주자이거우에 있는 호수 중 40%가 모여 있어 주자이거우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수정거우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꼽히는 호수 중 하나는 수정궁(水晶宮)이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그대로 물에 비쳐 또 다른 산이 있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다.

화화해 (훠화하이)

훠화하이(火花海)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꽃과 물의 색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색감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해질 무렵 붉게 물든 훠화하이의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진주탄 폭포

진주탄 폭포는 가장 큰 폭포로 폭포수가 떨어지면서 생기는 물방울들이 마치 진주가 튕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거센 물살에서 흘러나오는 웅장한 물소리가 위용이 있다.

창하이 호수

가장 큰 호수 장해는 오죽하면 이름이 바다로 지어졌을까? 이름처럼 광활한 크기를 자랑한다. 눈이 올 경우 출입이 통제되는 경우도 있다 한다. 해발 3000 m인데 이 바다 같은 호수가 수심 40m라 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 곳에서 약 400m 쯤 내려가면 주자이거우의 가장 아름다운 비경 중의 하나인 오채지에 이를 수 있다.

오채지 (우화하이)

주자이거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오채지에 이르면 사람이 혀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알맞은 수식어가 얼마나 있을까란 생각에 이른다. 아무리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오채지 앞에서는 입이 다물어 질뿐이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물 속에 거울처럼 비쳐 보이는 물풀들이 오묘한 색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속의 탄산칼슘 성분과 여러 엽록소 성분이 오색의 신비로운 색채를 뿜어내고 있다. 햇빛을 받으면 알록달록 빛나는 모습이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리고 시간에 따라 다른 색깔을 뽐낸다.

티벳 장족들

장족들은 원래 티벳을 근거지로 살았으나 라마교 종파의 분리로 이곳에 쫓겨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주자이거우가 발견되었을 때 아홉 개의 장족마을이 있어 그 이름을 구채구라 붙인 것처럼 아직도 이 곳엔 티벳장족들이 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다. 주자이거우 관광을 마치면 장족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말자. 이곳의 장족들은 부유하다. 보통 한 집당 자가용이 두 세대 있을 정도다. 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는 그들은 마을 내에 게스트하우스를 지어 관광객들이 마을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래 장족들은 야크와 염소를 방목하는 목축이 주업이고 약재를 캐기도 한다. 옥수수·밀·유채·잎담배 등의 농산물도 산출하는데 최근에 주자이거우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됨에 따라 장족들에게도 관광수입이 중요하게 되었다. 장족마을에선 마을 주민들의 환영의 행사와 춤을 관람하고 식사까지 할 수 있다.

쉐라톤, 파라다이스 등 거대 호텔들이 이 산속까지 들어와 거대한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호텔근처에는 민속 공연장이 있어 장족의 전통 공연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아름다운 의상과 춤 노래를 관람하면서 조용한 산속의 겨울 밤이 깊어 갔다.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관광객 수가 많이 줄어든다. 사람이 많을 때는 주자이거우를 관람할 때 떠밀려 다닐 정도라 하니 조용함을 즐기는 여행 고수들이라면 겨울이 지나기 전 설경을 만끽하는 것도 이색적일듯 하다.

여행 TIP

가는 길 : 인천에서 성도 세시간 반, 성도에서 국내선 50분 이동하여 주자이황룽(九寨黃龍)공항까지 도착하고 이후 또 자동차로 2시간쯤 달려야 주자이거우에 도착할 수 있다.

편의시설과 여행상품 : 주자이거우에 많은 호텔과 민속공연장이 모여 있고, 한식당도 있다. 많은 여행사들이 구채구. 황룡 연계상품을 패키지로 운영하고 있다.

기타 볼거리 : 주자이거우에서 남쪽으로 150㎞ 떨어진 황룡은 주자이거우와 마찬가지로 1992년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되었으며 주자이거우 못지않은 비경이다. 4㎞에 달하는 계곡 곳곳에 크고 작은 연못 3400여 개가 계단식 모양으로 생성되어 있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카르스트 지형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곳은 고도가 3100m 부터 시작되므로 고산병에 주의해야 한다. 정상 4200m 높이에는 황룡사라는 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