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 하구에 세워진 항구 도시 폼페이는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를 배경으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번창했다. 또한 전략적 위치에 자리 잡아 중요한 해상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쌓았다.

처음 이 도시를 지배했던 사람들은 그리스인이었다. 사르노 계곡과 나폴리 바다를 시원스럽게 내려다볼 수 있는 이곳에 그리스의 다양한 문화를 품은 신화의 도시가 건설됐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했고 그 뒤를 이어 에트루리아인, 삼니트인 등 다양한 민족과 시대가 아름다운 폼페이를 거쳐갔다.

이들 가운데 폼페이의 진정한 주인이었던 삼니트인은 거칠고 호전적이며 잔인해 그리스가 가진 나폴리 일대 식민지를 완전히 장악했다. 캄파니족으로 알려진 삼니트인들은 로마의 끈질긴 공격에도 항복하지 않고 로마인과 맞서 싸우기 위해 3㎞에 이르는 성벽을 쌓고 투쟁의 칼날을 드높였다.

그 후 기원전 90년 마침내 로마군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폼페이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로마 귀족의 별장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로마의 휴양지로 변했다. 로마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자 발전된 도시 문명이 속속 들어와 폼페이는 빠른 속도로 로마화가 이뤄졌다. 고대도시로서는 규모가 상당히 컸던 타원형의 폼페이는 지금 볼 수 있는 모습대로 로마인들이 새롭게 도시 계획을 한 것이 아니라 삼니트인들이 이미 만들었던 구역과 도로, 공공건물 등 많은 부분을 그대로 이용했다고 한다. 폼페이의 기초적인 틀이 삼니트인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기초를 바탕으로 로마문화가 성곽 안에서 꽃을 피우며 폼페이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세월의 깊이만큼 무거운 잿더미 아래서 무수히 많은 시간을 보냈던 폼페이는 1594년 헤르쿨라네움의 폐허가 처음 발견되면서 세상 밖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발굴 작업은 1748년부터 시작됐고 오늘날까지 폼페이의 5분의 4 정도가 옛 모습을 회복한 상태다. 4~5ｍ나 화산재로 뒤덮여 있던 폼페이가 양파 껍질을 벗듯 깊은 속내를 하나둘씩 드러낼 때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로마인들의 건축양식을 엿 볼 수 있는 기둥.

2000년 만에 환생한 폼페이 여행은 두 발로 시작한다. 달걀 모양으로 생긴 도시의 지도를 펼쳐들고 빽빽하게 숫자가 매겨진 장소를 따라 발길을 옮긴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폼페이에는 크게 8개의 문이 있는데 기차역에서 내려 매표소가 있는 `마리네문`을 통과하면 전설의 폼페이를 눈과 마음에 담을 수 있다. 폼페이는 한국 사람에게도 인기가 아주 많은 관광지여서 역 앞에 있는 상점에서 한국어로 된 폼페이책들이 1만원 정도 가격에 팔리고 있다. 지도를 펼치면 한눈에 폼페이 모습이 들어온다. 인구가 대략 2만~5만명이었던 폼페이는 없는 것이 없을 만큼 문화시설과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 한 개의 독립된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울퉁불퉁하고 검게 그은 큰 돌들이 길바닥에 누워 거리를 만들고, 큰 거리를 중심으로 각종 신전과 상점, 일반 주택, 공공시설물이 들어차 있다. 공중목욕탕, 빵집, 선술집, 도자기 굽는 집, 빨래터, 검투사의 집, 창녀들의 집, 극장, 원형경기장까지 2000년 전 폼페이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과 너무도 유사하게 건설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처럼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고대도시 폼페이에 서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몹시 흥분되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오른다. 프랑스의 스탕달이 "폼페이에 두 발로 서 있다는 것만으로 그 어떤 학자보다도 이곳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정말 폼페이의 어느 한 모퉁이에 앉아 베수비오산에서 뻗어 나오는 광채와 이 도시에 묻어 있는 화산의 향기, 그리고 이곳을 가득 메웠던 고대 사람들의 미소, 화려한 문양의 기둥, 당시의 삶을 전하는 벽화, 1만5000명의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진 원형경기장, 죽음과 맞서 싸운 검투사 등의 모습이 한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지나간다.

건물들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살피면 살필수록 폼페이가 뿜어내는 정기는 눈이 부실 만큼 지독하다. 상업과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폼페이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마치 작은 왕국처럼 꾸미길 좋아했던 것 같다. 집마다 월계수, 송악, 플라타너스 등의 나무로 작은 정원을 만들어 실록의 상큼함을 즐기고, 기둥은 화려한 문양으로, 집 내부는 고풍스럽게 장식해 예술적 삶을 지향한 그들의 우아한 자취가 폐허 곳곳에서 느껴진다. 저녁이면 정원에 삼삼오오 모여 은은한 포도주로 밤을 달래며 사랑, 철학, 예술 등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토론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낭만과 여유가 흐르는 폼페이는 정말 대단한 2000년 전의 도시였다. 하지만 화산 폭발로 인해 로마가 쌓아올린 명성과 그들의 삶은 한줌의 재가 됐고, 오랜 시간 화산재 밑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 폼페이! 이것만은 알고 떠나세요

△가는 길＝대한항공이 인천~로마 구간 직항편을 주 3회(수ㆍ금ㆍ일요일) 운항하고 있다. 약 12시간 소요. 로마에서 폼페이까지는 나폴리를 거쳐 2시간 남짓 소요된다.

△이탈리아 기차 여행＝이탈리아 국철을 이용하면 경제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열차는 5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유럽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1ㆍ2등급이 있는 유로 시티, 국내 도시를 연결하는 인터 시티, 급행열차 에스프레소, 준급행열차 디레토, 역마다 서는 완행열차 로칼레가 있다. 그 밖에 밀라노 피렌체 로마 등 대도시를 잇는 초고속 열차인 펜돌리노는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티켓은 철도역이나 여행사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